[인물] 모든 것은 숫자다, 피타고라스

신비의 철학자, 수학의 아버지,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약 580년~500년)는 단순한 수학자를 넘어서 종교 지도자, 철학자, 과학자, 그리고 신비주의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고대 그리스의 인물입니다. 그는 수학과 철학을 통해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수는 만물의 본질이다"라는 사상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수학 정리를 넘어서 윤리, 종교, 생활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퍼졌습니다.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


사모스섬에서 태어나 이탈리아로


 피타고라스는 오늘날의 터키 서해안에 위치한 사모스섬(Samos)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집트, 바빌로니아, 인도 등지로 여행하며 수학, 천문학, 종교 사상을 두루 배우고 경험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40세가 되던 무렵, 그는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톤(Croton)으로 이주해, 자신의 철학과 생활방식을 따르는 종교적 공동체인 '피타고라스학파(Pythagorean Brotherhood)'를 창립합니다.

 이후 그는 메타폰툼(Metapontum)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종교와 수학, 철학을 아우르는 삶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윤회, 채식주의, 그리고 규칙적인 삶


 피타고라스의 사상 중심에는 윤회(reincarnation), 즉 영혼의 순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동물과 식물로도 환생할 수 있다고 보았고, 따라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절제된 삶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공동체는 극단적인 규율을 따랐습니다:

- 콩을 먹지 않는다(콩은 영혼이 깃든 식물이라 여김)

- 신발은 오른발부터 신는다

- 사원 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 하얀 수탉을 만지지 않는다

- 말미잘과 쟁기질하는 소, 모든 동물의 심장을 먹지 않는다

 이 규칙들은 단지 괴상한 금기가 아니라, 정신적 순수성과 자아 통제를 위한 수행으로 여겨졌습니다. 피타고라스를 따르려면 5년간 침묵하면서 감정과 행동을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 조각상
피타고라스 조각상


수학은 곧 신에 이르는 길


 피타고라스는 수학을 순수한 진리를 향한 도구, 더 나아가 신에 이르는 경건한 행위로 보았습니다. 이 철학 속에서 그의 제자들은 수학적 발견을 통해 우주의 조화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피타고라스 정리(Pythagorean Theorem)입니다:

a² + b² = c²

 이는 직각삼각형의 두 변(밑변과 높이)의 제곱을 더하면 빗변의 제곱과 같다는 정리입니다. 이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원리는 오늘날까지도 기하학, 공학, 건축, 천문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 외에도:

- 무리수(√2 같은, 분수로 표현할 수 없는 수)

- 제곱근

- 수의 비례 관계와 음계의 연결(음악과 수학의 결합)

등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선도했습니다. 음악의 조화도 수학적 비율로 설명될 수 있다는 '우주의 음악(Musica Universalis)' 개념도 피타고라스 사상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피타고라스의 정리


피타고라스 이후, 신화가 된 삶


 피타고라스는 생전에도 신비로운 인물로 여겨졌지만, 죽은 이후에는 더욱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후대에는 그가 ‘달에 글을 썼다’, ‘시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했다’, 혹은 ‘신의 계시를 받은 존재였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그의 사후 수백 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점차 그 영향력은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플라톤 철학, 헬레니즘 신비주의, 그리고 근대 수학과 과학의 기초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피타고라스는 단지 수학 공식을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우주의 조화를 수의 질서로 이해하고자 했던 사상가, 그리고 삶 전체를 철학으로 살아낸 신비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 교과서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로만 접할지 모르지만, 그 삶은 진리, 절제, 탐구, 그리고 깨달음으로 향했던 고대 여정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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