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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계] 가도벌괵(假途伐虢),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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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계(混戰計), 제24계, 가도벌괵  가도벌괵은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친다'는 뜻으로 삼십육계 중 제24계입니다. 혼전계에 속하는 이 전략은 큰 나라를 공격할 때 작은 나라의 길을 빌려 공격하는 전략입니다. 공략 대상을 분단시켜 각개격파하는 전략이기도 한데 동맹을 맺어 이용한 뒤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공격하여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가도벌괵의 유래  춘추시대 우나라와 괵나라는 서로 이웃나라로 둘 모두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는 일찍부터 두 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진왕은 순식의 전략을 받아들여 먼저 우나라에게 좋은 말과 보물을 보내 매수하였습니다. 자신들이 괵나라를 공격하는데 진나라 군대가 우나라를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가도벌괵, 길을 빌려 괵나라를 토벌하다  우나라의 신하 관자가 이를 수상이 여겨, 절대 허락하지 말라고 간언하였습니다. 괵나라는 우나라의 병풍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괵나라가 망하면 자신들도 생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왕은 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진왕의 요구를 들어 주었습니다.  진나라 군대는 괵나라를 물리치고 회군하는 길에 우나라까지 공격하여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가도벌괵의 결론  군사계획의 의도를 숨기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쓰이는 계책입니다. 이 전략은 차도살인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도운 사람도 해쳐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어내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전략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소국이 적국과 자국 사이에 놓여 있을 때, 그 약소국이 적국의 손에 들어간다면 자국은 중대한 손실을 입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약소국을 도와 신임을 얻고 동맹 관계를 맺어 위험을 미리 막아야 합니다.

[36계]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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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계(混戰計), 제23계, 원교근공  원교근공은 혼전계에 속하는 제23계로, 먼 나라와 사귀고 이웃나라를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은 이 전략을 사용해 적국의 동맹을 와해시키고 각개격파하여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자국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취하는 외교 정책의 하나입니다. 원교근공의 유래  전한시대의 책사와 모사의 문장들을 모은 ‘전국책’에 나오는 말로 위나라 출신의 유세가인 범수가 진나라 왕을 설득하면서 한 말입니다. 전국시대 말 일곱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시절, 진나라의 세력이 제일 강대하여 나머지 국가들은 동맹 관계를 맺어 진나라를 경계하였습니다. 진나라 소양왕은 여섯 나라를 정복하여 중원의 패자가 되고자 하였고, 군대를 일으켜 가장 막강한 제나라부터 공격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원교근공,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다  이때 범수가 왕을 찾아와 제나라는 세력이 크고 진나라에서도 거리가 머니 이기기 어렵다고 말하였습니다. 게다가 제나라를 공격하려면 한, 위 두 나라를 거쳐야 하는데 병력이 줄어들 것이며, 먼거리를 이동하여 전투를 하는 군대에 소모가 많아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먼저 공격하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한, 위나라를 정복한 다음 전진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소양왕은 사신을 보내 제나라와 동맹을 맺고 이어 초나라와도 친교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중원의 중추이자 가까운 나라인 한나라를 공격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조, 연나라를 무너뜨려 북방을 통일하였고 초나라를 차지하여 남방을 평정하였습니다. 위나라에 이어 최후로 제나라까지 멸망시키면서 기원전 220년 진나라는 통일의 꿈을 실현하였습니다. 원교근공의 결론  적의 공격을 당할 때 근접 국가와 연맹하여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을 공격할 때 이 전략은 근접 국가를 공격하면서 멀리 있는 국가와 우호 관계를 맺는다면 근접 국가는 더욱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가까운 나라를 차지

[36계] 관문착적(關門捉賊), 문을 닫고 도적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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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계(混戰計), 제22계, 관문착적  '문을 닫고 도적을 잡는다'는 말로 도적이 물건을 훔치러 들어오면 문을 잠궈야 잡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적의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공격하는 전략으로 혼전계에 속하는 제22계 전략입니다. 약한 적은 포위해서 섬멸하는 전략을 씁니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면 도둑은 투지를 잃고 순순히 항복할 것입니다. 관문착적의 유래  당나라 희종이 보위에 오른 무렵, 나라의 정세는 매우 혼란스럽고 백성들은 피폐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결국엔 각지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 가장 강했던 반란군은 황소가 이끄는 농민군이었습니다. 서기 875년, 황소가 농민군을 이끌고 장안을 공격하자 당 희종과 대신들은 성도로 도망쳤습니다. 관문착적(關門捉賊), 문을 닫고 도적을 잡다 (픽사베이)  881년, 황소는 상양을 보내어 당나라 장군 봉상이 이끄는 군대를 공격하였으나 크게 패하여 도망쳤습니다. 당나라는 기세를 몰아 반란군을 모두 잡아들일 생각으로 상양을 추격하여 장안까지 올라왔습니다.  상양은 황소에게 형세가 매우 불리함을 알렸습니다. 황소는 여러 장군들과 논의한 후 관문착적 전략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장안을 빠져 나와 둑에 진을 치고 반란군을 주둔시켰습니다.  당나라 군이 성 안으로 들어와 보니 반란군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약탈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날밤, 농민군은 맹해의 지휘 아래 신속히 장안으로 돌아와 모든 퇴로를 막고 당나라 군대를 공격하였습니다. 당나라 병사들은 크게 당황하여 대패하였습니다. 장안성은 결국 다시 황소의 농민군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관문착적의 결론  적의 수가 적고 힘이 약하다면 아군이 승리하기가 가장 쉽습니다. 적군의 힘이 약하고 유능한 지도자가 없는 경우에 적의 모든 퇴로를 봉쇄한 상태에서 속전속결로 적을 물리치는 전략이 바로 관문착적입니다.  민첩한 적군이라면 퇴로를 발견했을 때 그 틈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퇴로가 막혀 있다면 적의 민첩함은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36계] 금선탈각(金蟬脫殼), 매미가 허물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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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계(混戰計), 제21계, 금선탈각  '금선탈각은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뜻으로 36계 중 제21계, 혼전계에 속하는 전략입니다. 적군이 압도적으로 강해 저항해봤자 손해만 확대될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철수하여 체제를 재정비합니다. 이때 무작정 퇴각하면 적의 추격을 받을 위험이 큽니다. 금선탈각은 이런 상태에서 안전하게 철수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아간 것처럼 마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놓고 철수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전투 태세를 보이며 적이 계속 한 곳을 경계하도록 한 후 주력 부대를 이동시켜 다른 방향에서 적을 공격할 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금선탈각의 유래  전한 2년 항우가 병사를 거느리고 유방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를 초한전쟁이라고 하는데 유방은 크게 패해 영음까지 도망갔습니다. 항우의 군대는 영음을 포위하였습니다. 이때 장군 기신이 유방에게 자신이 유방으로 거짓분장을 하고 항우를 유인할테니 그 틈을 타 도망가라고 말했습니다. 금선탈각(金蟬脫殼), 매미가 허물을 벗다 (픽사베이)  기신의 충고를 받아들인 유방은 그날 저녁에 부녀자들과 2천명의 병사들이 동쪽 문을 통해 성밖으로 나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유방의 마차에는 기신 장군이 앉아 있었고 마차의 좌우에는 유방의 깃발이 가득 꽂혀 있었습니다. 기신은 항우의 병사들에게 성내의 식량이 떨어져 항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방은 그 틈을 타 10명의 병사만 거느리고 서문으로 도망갔습니다. 유방의 마차가 가까이 오자 그제서야 항우는 유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속은 것을 깨달은 항우는 분노하여 기신을 불태워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금선탈각의 결론  매미는 아무도 모르게 허물을 벗고 껍데기만 남겨 놓습니다. 매미의 허물은 진짜 매미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 적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군이 불리한 위치에 있을 때 이 전략을 사용해 도망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략이 도망가기 위해서

[36계] 혼수모어(混水摸魚), 물을 흐려 물고기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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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계(混戰計), 제20계, 혼수모어  '물을 흐리게 한 후 물고기를 잡는다'는 말로 적진을 혼란에 빠뜨린 뒤에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 공격하라는 말입니다. 제20계이며 혼전계에 속합니다. 혼전계가 적이 혼란한 와중에 틈을 타 승기를 잡는 전략인데 그 정의에 가장 알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혼수모어의 유래 첫번째 일화, 촉나라의 성장  삼국지의 촉서에는 유비가 촉나라를 넓혀나간 전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형주는 지세가 좋아 오래 전부터 군사상 요지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을 다스리는 유표는 온화한 외모와는 달리 의심이 많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군중들의 혼란스러움에도 수수방관하였습니다. 익주는 곡식이 많아 그 백성들의 생활이 풍요로웠으나 지도자 유장은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어서 백성들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랐습니다.  제갈량은 먼저 손권과 연합하여 조조에 대항하여 적벽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순조로이 형주를 얻었고 그곳에 근거지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유장의 내부 세력이 혼란한 탐을 타 익주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제갈량은 형주와 익주를 정벌할 때 모두 상대의 혼란한 틈을 이용하였습니다. 혼수모어(混水摸魚), 물을 흐려 물고기를 잡다 (픽사베이) 두번째 일화, 관도전투  관도의 전쟁에서 조조와 원소 양군은 서로 대치 상태에 있었습니다. 조조의 군대는 양식이 부족하였으나 원소의 군대는 오소에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고 출정하였습니다. 조조는 원소의 식량 창고를 불태우기로 작전을 세웠습니다.  조조의 병사는 원소의 병사 갑옷을 훔쳐 원소의 병사로 가장하고 적군의 깃발을 꽂고 오소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도중에 원소의 병사와 만나기도 하였지만 자신들은 지원부대라고 말하며 위기를 넘겼습니다.  결국 그들은 무사히 오소에 도착하여 창고에 불을 붙였습니다. 사방에 연기가 피어 올랐고 원소의 병사들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원소의 진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조조는 혼란한 틈을 이용해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혼수모어의 결론  혼란

[36계] 부저추신(釜底抽薪), 가마솥 아래 장작을 빼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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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계(混戰計), 제19계, 부저추신  '가마솥 밑의 장작을 빼낸다'는 뜻으로 장작을 꺼내 물이 끓는 것을 그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적의 계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적이 세력이 강할 때는 직접 대항하지 않고 유함으로 대처하는 전략입니다. 적의 활동을 제압하고 자멸까지 노릴 수 있으며 회유나 협박을 통해 적군 개개의 세력을 이반시키는 등 적의 세력을 줄이는 것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정면공격을 하지 않고 우선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서 그곳을 공략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부저추신의 유래  제나라의 26대 왕인 제경공은 협곡에서 공자에게 당한 일에 몹시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재상인 안영이 죽었는데 그 뒤를 이어 재상이 될 만한 인재도 없었습니다. 이때 노나라는 공자를 등용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근심이 많아진 경공은 점점 노나라가 강해지면 제나라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신하 여미에게 물었습니다. 여미는 부저추신 전략을 이용하여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도록 만들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노나라 왕인 노정공은 여색을 밝히는 호색가이므로 그에게 미녀들을 바치면 미색에 빠져 국사에 무관심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공자는 화를 내며 떠날 것이라고 하자 제경공은 좋은 묘책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부저추신(釜底抽薪), 가마솥 아래 장작을 빼내다 (픽사베이)  이에 여미는 80명의 미녀와 말 120필을 이끌고 노나라로 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노나라의 재상 계사는 미녀들을 보기 위해 궁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제나라 여인들이 춤을 추고 온갖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자 마치 허공을 날 듯 황홀했습니다.  계사는 미녀들에게 정신이 팔려 노정공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잊었습니다. 그는 노정공이 여러차례 찾은 후에야 입궁을 하였습니다. 노정공은 제나라의 서찰을 읽어보고서는 계사에게 기쁘게 잘 받겠다는 답신을 쓰게 하였습니다.  노정공은 계사에게 미녀들이 어디 있냐고 물었고 계사는 노정공을 궁 밖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노정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