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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ugust, 2025

[인물] 고대 그리스 정치가, 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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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지혜로운 입법자  솔론(Solon, 기원전 약 658년~500년)은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입법자, 장군이자 시인이며, 고대 그리스의 ‘7현인(七賢人)’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를 타파하고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부 체제, 즉 민주주의의 기틀를 마련한 선구자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솔론’이라는 이름은 ‘현명한 입법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입법자, 솔론 귀족 출신에서 개혁가로  솔론은 귀족 계급 출신이었으며 그의 지위 덕분에 정치와 군사 분야에서 일찍이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테네와 라이벌 도시국가인 메가라 간의 분쟁에서 살라미스섬을 되찾는 데 공을 세운 장군으로 처음 이름을 알렸습니다. 당시 그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시를 써서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고 이 전쟁의 승리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드라코의 유산을 뒤엎다: 형벌 완화와 권력 분산  기원전 594년, 솔론은 아테네의 공식 입법자로 선출됩니다. 그가 취임했을 당시 아테네 사회는 경제 불균형과 사회 불안로 매우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앞선 입법자인 드라코(Draco)가 만든 법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잔인해 사소한 죄에도 사형이 선고되는 등 시민들의 불만이 극심했습니다.  솔론은 다음과 같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 채무 탕감과 노예 해방: 빚을 갚지 못해 노예가 된 시민을 해방시키고, 외국에 팔려간 아테네인를 되찾았습니다. - 드라코 법의 개정: 살인죄 등 중범죄를 제외한 대부분의 형벌을 완화했습니다. - 정치 참여 확대: 재산에 따라 시민을 네 계급로 나누고, 상위 계급에게 공직 참여를 허용하되 모든 시민이 법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소송 제기와 배심제: 모든 시민이 법정에서 소송을 제기할 권리, 그리고 배심원이 될 자격를 부여받았습니다. - 사백인 평의회(Boule) 설치: 귀족 중심의 아레오파고스 의회 외에 선출된 시민 400명가 정무...

[인물] 모든 것은 숫자다, 피타고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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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철학자, 수학의 아버지,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약 580년~500년)는 단순한 수학자를 넘어서 종교 지도자, 철학자, 과학자, 그리고 신비주의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고대 그리스의 인물입니다. 그는 수학과 철학을 통해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수는 만물의 본질이다"라는 사상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수학 정리를 넘어서 윤리, 종교, 생활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퍼졌습니다. 피타고라스 사모스섬에서 태어나 이탈리아로  피타고라스는 오늘날의 터키 서해안에 위치한 사모스섬(Samos)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집트, 바빌로니아, 인도 등지로 여행하며 수학, 천문학, 종교 사상을 두루 배우고 경험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40세가 되던 무렵, 그는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톤(Croton)으로 이주해, 자신의 철학과 생활방식을 따르는 종교적 공동체인 '피타고라스학파(Pythagorean Brotherhood)'를 창립합니다.  이후 그는 메타폰툼(Metapontum)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종교와 수학, 철학을 아우르는 삶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윤회, 채식주의, 그리고 규칙적인 삶  피타고라스의 사상 중심에는 윤회(reincarnation), 즉 영혼의 순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동물과 식물로도 환생할 수 있다고 보았고, 따라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절제된 삶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공동체는 극단적인 규율을 따랐습니다: - 콩을 먹지 않는다(콩은 영혼이 깃든 식물이라 여김) - 신발은 오른발부터 신는다 - 사원 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 하얀 수탉을 만지지 않는다 - 말미잘과 쟁기질하는 소, 모든 동물의 심장을 먹지 않는다  이 규칙들은 단지 괴상한 금기가 아니라, 정신적 순수성과 자아 통제를 위한 수행으로 여겨졌습니다. 피타고라스를 따르려면 5년간 침묵하면서 감정과 행동을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고 합니다. 피...

[인물] ‘모세의 기적’을 만든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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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전달자, 민족의 해방자, 모세  모세(Moses)는 구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지도자이자, 하나님의 율법을 전달한 예언자로 여겨집니다. 그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한 인물로 존중받고 있습니다. 세 종교 모두가 그를 율법의 수여자로 인정하며, 그의 생애는 믿음과 순종, 갈등과 구원의 이야기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깊은 감동과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모세 Moses 이집트 궁전에서 갈대 바구니까지  모세의 출생 이야기는 <출애굽기>에 등장합니다. 당시 이집트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급속한 인구 증가를 두려워해 모든 히브리 남자 아기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아들을 갈대 바구니에 담아 나일강에 떠내려 보냈고, 이 바구니는 우연히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그녀의 아들로 입양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궁전에서 왕자로 자라났지만, 히브리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히브리인을 학대한 이집트인을 살해한 뒤 도망쳐 광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곧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시오” 해방의 사자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모세를 부르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라는 사명을 내립니다.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파라오에게 찾아가 "내 백성을 내보내시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이를 거절했고, 이에 하나님은 메뚜기 떼, 피비린내 나는 강, 우박, 흑암, 장자의 죽음 등 열 가지 재앙을 이집트에 내립니다.  마지막 재앙은 특히 무서웠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이 죽는 재앙이었고, 히브리인들의 집만 이 재앙을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pass over). 이 사건은 훗날 유대 전통에서 유월절(Passover)이라는 명절로 기념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건의 상징이 되...

[인물]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대서사시, 호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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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의 아버지, 호메로스  호메로스(Homer)는 기원전 약 8세기경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자,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라는 두 편의 장대한 서사시를 남겼으며, 이 작품들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호메로스 신화와 역사의 교차점, 트로이 전쟁  호메로스의 작품은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격분한 스파르타 왕 메넬라우스는 그리스 전역의 군대를 소집해 10년 동안 트로이를 포위한 끝에 도시를 점령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는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등 수많은 영웅들이 참전했으며, 이들의 활약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해를 중심으로, 특히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비극적인 선택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전쟁의 격렬함과 인간적 고뇌가 교차하며, 신과 인간이 얽힌 서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10년에 걸친 모험과 시련을 다룹니다. 바다의 괴물, 요정, 신들의 간섭 속에서도 그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향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트로이 전쟁(영화 '트로이'의 한 장면) 호메로스는 실존했을까?  호메로스의 실존 여부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계의 큰 논쟁거리입니다. 실제로 호메로스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아니면 구전된 이야기들을 편집·정리한 대표 이름인지, 혹은 여러 명의 작가가 공동 작업한 집단 창작물인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합니다.  또한 그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전설도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으며, ‘눈먼 음유시인’이라는 이미지가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