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에게 고추가 후추여야 했던 까닭

[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0-24 12:23:54 작성되었습니다]

후추

 후추는 영어로 Pepper라고 하죠. 고추는 Red Pepper 또는 Hot Pepper라고 합니다. 전혀 다른 작물에 왜 Pepper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된 것일까요?

 콜럼버스는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항해에 나서게 됩니다. 콜럼버스가 애초에 도달하고자 했던 곳은 인도였지만,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이곳을 탐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이곳을 인도라고 믿었어요. 원주민에게 인디언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지명에 서인도 제도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왜 인도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요? 그의 항해 목적이 인도에서 후추를 확보해 스페인으로 직접 들여오는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후추찾기"가 그 험난한 항해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었을 테지만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네요.


 유럽에서는 고기가 중요한 식량이었지만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보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가축에게 먹일 풀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유럽인들은 겨울이 오기 전 최소한의 가축만 남긴채 나머지는 도살해 고기로 만들었습니다. 쉽게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고기로 버텨냈다고 하네요.

 고기의 부패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의 방법을 썼죠. 향신료도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였어요. 향신료가 있다면 고기를 어느 정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보존이라기보다는 부패한 냄새를 감춰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콜럼버스

 후추는 남인도가 원산지로 유럽에서는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먼 거리를 돌아 유럽으로 가져오려면 막대한 운송비가 들었죠. 유럽에서 후추는 고가의 사치품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세기 유럽에서는 후추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후추 가격은 황금과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1그램의 후추가 같은 무게의 순금과 비슷한 가격에 거래될 정도였다고 하네요.

 아메리카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열심히 후추를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후추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구요. 어렵사리 자금을 지원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스페인에 돌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에 콜럼버스는 후추와 전혀 다른 작물인 고추를 후추로 속여 스페인에 보냈습니다. 아니, 보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아메리카 대륙이 인도여야 했듯이 그곳에서 발견한 고추 역시 후추여야만 했습니다.

고추

 이렇게 유럽에 전해진 고추는 처음에는 유럽인들에게 외면을 받았다고 해요. 매운맛이 너무 강하고 향이 후추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에 후추를 대신할 향신료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항해를 해야 하는 뱃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식물이었습니다. 당시 뱃사람들을 괴롭히든 괴혈병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괴혈병의 원인은 비타민C 부족인데 고추에는 비타민C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습니다. 신대륙에서 배를 통해 들여온 것이 초기에는 뱃사람들에게만 사랑을 받았다니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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