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존 레논(John Lennon)

 존 레논은 영국의 싱어송 라이터이자 사회운동가입니다. 비틀즈 내에서 보컬리스트, 리듬 기타리스트, 작곡가였습니다. 비틀즈 라고 하면 폴 매카트니와 더불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비틀즈가 해체한 이후로는 영국을 떠나 뉴욕에 정착해 활동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로는 음악 뿐만 아니라 좌익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했습니다.

존 레논 John Lennon
존 레논 John Lennon


비틀즈와 존 레논


 베이비부머 세대의 문화 아이콘인 존 레논(John Lennon, 1940년~1980년)은 비틀즈의 기타리스트이자, 폴 매카트니와 더불어 공동 작곡자로서 20세기에 가장 기억에 남고 영향력 있는 팝송 히트곡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비틀즈 멤버처럼 존 레논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습니다. 폴 매카트니와는 1957년에 콘서트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고전 끝에 음반 계약에 성공한 비틀즈는 1962년에 최초의 히트송 <러브 미 두>를 발표했고, 이 곡은 크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1964년 초, 뉴욕에 입성한 네 사람은 미국의 여러 음반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존과 폴이 함께 만든 곡 중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헬프>(1965년), <올 유 니드 이즈 러브> (1967년) 그리고 <컴 투게더>(1969년)가 있습니다.

비틀즈 The Beatles
비틀즈 The Beatles


비틀즈의 해체 이후


 비틀즈는 1970년에 개인적, 재정적 분쟁으로 해체했습니다. 레논과 그의 부인 오노 요코는 1971년에 뉴욕으로 이주했고, 레논은 그곳에서 남은 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반전(反戰) 싱글 음반 <기브 피이스 어 챈스>(1969년)와 유토피아적인 찬가 <이매진>(1971년)은 비교적 정치색이 적었던 비틀즈의 노래와는 차이가 있었는데, 두 곡 모두 평화 시위대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1980년에 앨범 <더블 판타지>를 발표한 직후, 존 레논은 자신의 아파트 앞길에서 마크 채프먼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채프먼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뉴욕의 애티카 주립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뉴욕 주 가석방 위원회는 2008년에 다섯 차례에 걸친 그의 가석방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2007년에 영국 워딩에서 열린 비틀즈 기념품 경매장에서 존 레논의 머리카락 한 타래가 4만 8000달러에 판매되었습니다. 그가 1966년 일본 공연 당시 썼던 선글라스 테는 15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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