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탕평책을 추진한 영조
영조(英祖, 1694~1776)는 조선의 제21대 국왕으로 1724년부터 52년간 장기간 재위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회를 깊게 변화시킨 인물입니다. 그는 당파 간의 갈등이 극심했던 시대에 즉위하여 탕평책을 추진하면서 분열된 조정을 안정시키고 공존의 정치를 꾀했습니다. 또한 영조는 조선 왕들 가운데 드물게 젊은 시절과 노년기의 초상이 모두 남아 있어 그의 생애와 이미지를 후대가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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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 |
철저한 금주주의자
영조는 술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그는 술을 “맑은 기질을 혼탁하게 만들고, 착한 본성을 악하게 만드는 광약”이라 비판하며 철저한 금주령을 시행했습니다. 제사상에조차 술 대신 식혜나 다른 대체 음료를 올리도록 했고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물론 조선 시대에 금주령은 종종 내려졌지만 대부분 농사철의 노동력 보존을 위한 일시적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영조는 왕으로서의 신념과 도덕적 의지로 꾸준히 이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입니다.
검소함과 절제의 군주
영조는 생활 태도에서도 철저히 검소함을 유지했습니다. 정조가 기록한 <영조행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비단옷을 멀리하고 명주 바지도 입지 않았으며 옷은 여러 번 빨아 입어 솜이 삐져나오는 경우도 흔했다고 합니다. 식사 역시 늘 몇 가지 반찬에 불과했고 상 위에 음식 가짓수가 늘어나면 오히려 거절했습니다.
이러한 검소함은 왕실뿐 아니라 사대부 사회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조는 수입 사치품을 비판하며 국산품 사용을 장려했고 특히 여성들의 머리에 얹는 화려한 가채 문화도 사치의 상징으로 여겨 이를 억제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사회 전반에 검소한 풍조를 퍼뜨리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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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의 원릉 |
정치와 제도 개혁
영조는 정치적 안정뿐 아니라 제도 개혁에도 힘썼습니다. 그는 <속대전>을 편찬하여 법과 제도를 정비했으며 억울한 판결을 줄이기 위해 삼심제를 엄격히 시행하고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는 등 사법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또한 세제 개혁의 일환으로 균역법을 실시하여 농민들의 군포 부담을 줄이고자 했지만 양반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완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조선 후기 세제 개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영조의 역사적 의의
영조는 52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 동안 조선을 안정시키고 제도적 개혁을 시도한 실용적 군주였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집착하는 면모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의 정책들은 왕권 강화와 백성의 생활 안정이라는 두 축을 중심에 두고 추진되었습니다. 절제와 검소함, 그리고 탕평책을 통한 정치적 균형은 오늘날까지도 그를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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