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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October, 2023

[뮤직 키워드] 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 / 샘플링(Samp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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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Singer-Song Writer)  말 그대로 가수이자 직접 작사-작곡도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포크(Folk)시대부터입니다. 1950년대 말 불붙은 포크 열기는 1960년대 초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흑인민권운동 같은 정치운동과 맞물리며 미국에서 폭발했습니다. 포크와 1960년대 포크록 계열에서 자작곡을 부르는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가수 이미지, ⓒPixabay  포크 뮤지션은 작곡 도구로 적합한 악기인 통기타에 능했습니다. 통기타 한 대로 자기가 만든 노래를 연주하며 부를 수 있는 포크는 이들의 작곡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개인적 세계관을 담은 메시지나 시적 가사를 주로 노래하던 음악 경향도 한목했습니다. 밥 딜런, 폴 사이먼, 닐 영 등은 그 시절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들입니다. 샘플링(Sampling)  전자기술의 발달로 1980년대 중반 샘플러(Sampler)가 등장했습니다. 악기와 목소리는 물론 자연음까지 손쉽게 음원으로 만들고 재생하는 기계였습니다. 샘플러의 탄생은 미리 심어놓은 음원만 재생하는 신디사이저의 한계를 깨는 혁명이었습니다. 신디사이저 이미지, ⓒPixabay  곧이어 기타, 드럼, 베이스 같은 악기 연주를 새로 녹음하지 않고 기존 팝-클래식 음반의 연주 음원을 그대로 따서 쓰는 샘플링 기법이 등장했습니다. 미국 래퍼 퍼프 대디는 히트 팝송을 샘플링한 노래들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계’의 멜로디를 따온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신화의 ‘T.O.P’ 등이 있습니다. 샘플링은 표절에 대한 전통적 기준 자체를 뒤흔들만큼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뮤직 키워드] 펑크(Funk) / 펑크(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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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Funk)  흑인 특유의 체취를 뜻하는 속어 펑크(Funk)에 뿌리를 둔 말입니다. 1950년대 흑인 연주자들은 백인화된 테크닉 위주 재즈에 반발하여 가스펠과 블루스에 회귀하는 재즈를 모색했습니다. 그 음악에 대해 흑인 몸냄새가 난다는 의미로 펑키(Funky)란 속어 형용사를 붙였습니다. 명사화한 펑크는 소울과 같은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소울이 상업적 댄스로 퇴색하자 본래의 블랙 뮤직을 펑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소울의 아버지’ 제임스 브라운을 ‘펑크 선구자’로 꼽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고무공처럼 탄력있는 리듬이 특징인 펑크는 1970년대 ‘케이시 앤 더 선샤인 밴드’, ‘어스 윈드 앤 파이어’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며 절정을 구가했습니다. Funk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펑크(Punk)  너덜너덜 찢어진 옷차림, 형형색색의 기괴한 머리, 쇠사슬처럼 음울한 장신구 등의 펑크 룩(Punk Look) 스타일에서 보여지듯이 펑크는 음악 차원을 넘어 1970년대 유럽과 미국의 청년세대 문화현상이었습니다. 음악적으로 펑크 발생지가 미국인지 영국인지는 논란거리입니다. 하지만 1976년 영국에서 불붙었다는 사실에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섹스 피스톨스’는 우악스럽고 원시적인 사운드로 뒷골목 노동계급 청년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모든 기존 질서에 시비와 조롱을 퍼부은 펑크는 당시 영국 사회의 암울한 상황을 자해적으로 표출한 ‘부정의 음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야생성은 현실과 부대끼며 퇴조했고 1980년대 들어 사실상 소멸되었습니다. 런던 펑크는 197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록의 축이 되었습니다. Punk 이미지, ⓒPixabay

[뮤직 키워드] 모던 록(Modern Rock) / 브릿팝(Brit 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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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록(Modern Rock)  1970년대 말 디스코 열풍에 이어 1980년대 여피들의 여가용 음악 ‘뉴 로맨틱스’가 음악시장을 점령하면서 ‘청년 반문화-저항음악’ 록은 사망선고를 받습니다. 모던록은 전통적 록 시대가 막을 내린 뒤 등장한 1980년대 이래 록음악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드럼이미지, ⓒPixabay  그런데 1960년대~70년대와 달리 이 시기 록은 팝, 포크를 비롯한 다른 장르를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때문에 음악적으로 모던록의 개념은 아주 포괄적입니다. 당시 빌보드 모던록 차트를 보면 전통적 의미의 록이라기보다 팝이나 포크, 테크노, 댄스에 가까운 음악들이 다양하게 등장하였습니다. 브릿팝(Brit Pop)  1990년대 영국에선 기타 중심의 록 사운드와 1960년대 영국 팝을 접목한 음악이 나타났습니다. 복고의 느낌과 친근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특징인 이 장르를 브릿팝이라 불렀습니다.   팝음악이 1980년대 이후 힙합 테크노처럼 복잡하고 감각적인 리듬을 받아들인 것과 달리 브릿팝은 대부분 단순하고 안정된 4분의4박자를 고집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하지만 모던록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서 모호하듯이, 브릿팝도 어떤 범주로 묶기 힘들만큼 다양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중이미지, ⓒPixabay  같은 브릿팝 밴드라도 1960년대 로큰롤 스타일을 재현한 오아시스, 보다 정돈된 팝 사운드에 비틀즈 화성을 계승한 블러, 그런지 사운드에 팝 멜로디를 얹어낸 라디오헤드 등 여러 색깔을 보여줍니다.

[뮤직 키워드] 발라드(Ballad) / 블루스(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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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Ballad)  발라드(Ballad)는 원래는 중세 유럽의 이야기 형식 민요를 일컫는 말로 출발했습니다(클래식 음악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조금씩 성격이 바뀌면서 18세기에는 러브 송(Love Song)을 의미하는 용어였으며, 19세기엔 영국 상류사회에서 유행하던 센티멘탈 가곡을 발라드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현대 음악에서는 느린 리듬의 곡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됩니다.  발라드는 대개 조용하고 우아한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 보통 피아노, 현악기, 기타 등의 악기를 사용하며, 보컬의 중요성이 높은 장르입니다. 특히, 슬픈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며, 사랑, 이별, 그리움 등의 주제를 다룹니다. 노래 이미지 ⓒ Pixabay  발라드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 장르 중 하나이며, 특히 한국에서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발라드는 대체로 애절하고 슬픈 느낌의 곡이 많으며, 가사에 감성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아티스트들이 발라드를 선보이면서 대중음악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발라드는 대중음악 장르 중 하나이며, 특히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발라드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록, 팝, 힙합 등의 다른 장르들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발라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발라드는 R&B, 소울, 재즈 등의 장르와 결합되어 그 인기가 다시 상승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르와 리듬을 골격으로 삼느냐에 따라 팝발라드, 록발라드, 힙합발라드, R&B바라드, 메탈발라드 식으로 세분화하기도 합니다. 재즈에선 발라드 원곡의 멜로디를 살리며 즉흥연주하는 것을 ‘발라드 연주’라고 부릅니다. 블루스(Blues)  말 그대로 슬픈(Blue) 음악인 블루스는 19세기 중엽 미국의 흑인들이 자신의 슬픔과 절망을 노래한 민중가요로 태어났습니다. 슬픈 이야기와 그리움,

[뮤직 키워드] 랩(Rap) / 리듬 앤 블루스(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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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Rap)  Rap은 속어로 ‘지껄이다’라는 뜻으로 말을 빠르게 말하면서 리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장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힙합과 연관이 있으며, 곡의 대부분이 반주없이 랩 가수의 보컬에 집중합니다.  1970년대 말 뉴욕 브롱스 지역의 디스코 DJ들이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는 DJ와 MC가 함께 클럽에서 공연을 했으며, DJ는 비트를 만들고 MC는 가사를 노래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는 힙합 문화의 대중화와 함께 Rap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랩 이미지, Pixabay  Rap은 가사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대부분의 랩 가수들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 문화 등을 바탕으로 한 가사를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가사는 종종 사회 문제, 정치, 인종 문제, 성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룹니다. 1980년대 신보수주의로 흑인 상황이 악화되자 급진 정치적 거리문화로 확산되었습니다. 백인사회에 대한 저항과 살인, 마약, 폭력을 거침없이 담고 있습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이스트코스트(동부 연안) 랩’과 LA를 중심으로 한 ‘웨스트코스트(서부 연안) 랩’으로 나뉩니다. 이스트코스트랩은 사설을 툭툭 내뱉는 반면, 웨스스코스트랩은 이죽거리듯 늘어놓습니다.  랩하는 사람은 래퍼(Rapper)라고 부릅니다. 1990년대 일부 래퍼는 팝과 손을 잡고 대중적 기반을 넓혔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 장르 중 하나이며, Rap 스타들은 광고 모델, 패션 아이콘, 배우 등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적인 팬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서태지 이후 댄스곡마다 양념처럼 간주사이에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정도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R&B(리듬 앤 블루스)  R&B는 '리듬 앤 블루스'의 약자로, 블루스와 리듬 앤 댄스(Rhythm and Dance)의 요소를 결합한 음악 장르입니다. 1940년대 말부터 1950

[단편상식] 안드로이드(Andr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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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3-02-10 21:50:28 작성되었습니다]  안드로이드(Android)는 구글이 개발한 리눅스 커널 기반의 모바일 운영 체제입니다. 구글이 주도하는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가 개발하였으며 2008년에 처음 출시되었습니다. 이후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마트폰 운영 체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오픈 소스로 설계되었으며, 이는 개발자와 제조업체가 자신의 요구에 맞게 OS를 수정하거나 사용자맞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해 고유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장치에 설치할 수 있는 사용자 지정 ROM으로 알려진 많은 버전의 OS가 생성되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저가 스마트폰에서 하이엔드 태블릿 및 스마트워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기반의 장치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과 같은 터치스크린 모바일 장치를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안드로이드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구글 지도, 구글 드라이브, 구글 플레이 스토어와 같은 구글 서비스와의 통합입니다. 이것은 안드로이드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안드로이드는 또한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며 사용자가 여러 앱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게 해주며, 다양한 런처와 위젯을 설치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여 홈 화면에 대한 사용자 지정 옵션도 제공합니다.  게다가 구글 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방대한 앱 생태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스토어는 게임, 생산성 도구, 소셜 미디어 앱 등을 포함한 다양한 앱을 제공하여 세계에서 인기 있는 스마트폰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안드로이드는 또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스마트 TV와 같은 다른 형태의 기술에 통합되어 그 범위와 영향력을 더욱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 이 포스팅은 챗GPT와의 채팅내용을 파파고로 번역하여 글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재미있네요^^).

[단편상식] 도시전설(Urban Le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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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2-29 20:58:43 작성되었습니다]  도시전설(都市傳說, Urban Legend)은 근현대를 무대로 한 증명되지 않은 전설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뜻하는 용어로도 종종 사용됩니다.  도시전설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 과장되고, 선정적으로 변형된 측면이 있습니다.  도시전설이 도시에서의 이야기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산업화 이전의 전통전설과 대비되어 쓰일 뿐입니다. 사회학자나 민속학자들은 ‘현대전설’(Contemporary Legend)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보통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설명할 때는 "친구의 친구에게 일어났던 일이라는 형태로 널리 퍼지곤 합니다. 도시전설은 전자우편이나 뉴스 등으로 전파되는데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야기의 근원지를 추적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처음에는 '이상한 이야기'에서 '기담', '괴담' 으로, 그리고 그럴 듯한 근거를 갖추면 '도시전설' 이 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Urban Legend’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968년에 인쇄물을 통해서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1981년 유타대 영문학 교수 얀 헤럴드 버나드의 저서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도시괴담, 도시전설, 현대민담 등으로 쓰이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도시전설이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단편상식] 정관헌에서 양탕국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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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2-27 21:12:03 작성되었습니다] [정관헌]  커피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후 처음으로 커피를 즐긴 사람은 누구일까요?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고종황제라고 합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황제와 황태자는 1896년 2월부터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게 됩니다. 그 유명한 아관파천이죠.  당시 러시아 공사 베베르를 통해 처음으로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고종은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물을 짓고 외국사신이 방문해 오면 함께 커피를 즐겼다고 합니다. 커피에 대한 명확한 이름이 없던 당시에는 양탕국이라고 불렀는데 서양에서 온 탕국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점은 1902년 문을 연 손탁 호텔에 있었습니다. 아관파천 당시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든 사람은 사교계에서 유명했던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가 운영하는 호텔이었나봐요. 손탁 호텔은 우리나라 일반 대중에게 커피를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손탁호텔]  한국판 커피하우스는 다방이라고 불렸습니다. 고려시대 궁중의 연회나 사신의 접대를 위한 관청인 다방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1928년 종로에 비너스라는 다방이, 1929년에는 멕시코 다방이 문을 열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마담으로 상징되는 동네 다방이 일반화되었고, 이어서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음악다방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에게 커피는 서양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것이 도회적이고 세련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곧 신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비쳐지게 되었습니다.

기자의 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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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2-15 14:33:45 작성되었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자질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몇몇 기사들을 보면서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 몇자 적어 보려 합니다. 인터넷에서 일본의 식량자급률이 떨어졌다는 기사 내용에서 어패류를 어폐류 라고 적은 것을 보았습니다. 물고기 어, 조개 패 라는 한자를 합친 단어잖아요. 생선과 조개류를 합쳐서 이르는 말인데, 어폐류라니... 정말 그 말에 어폐가 있네요.  또 며칠 전에는 포털 스포츠 면에서 야구선수 키움 이정후의 여동생과 LG 고우석이 결혼한다는 내용에서 [고우석은 이정후의 처남이 된다]라는 내용을 보았어요. 이정후가 결혼도 안 했는데 처남이 있을리 만무하죠. 처남과 매제의 뜻을 모른다니 기가 막혔습니다. 다시 찾아보려고 하니 기사를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부디 제가 잘못 본 것이길 바랍니다.  요즘 기자를 어떤 기준으로 뽑는지 모르겠네요. 우리나라의 언론사 직원(기자뿐만 아니라)이라면 기본적인 한국어 구사능력은 확인을 하고 채용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그것이 기본 소양이라 생각이 드네요. 단순 오타라면 애교 수준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사용한다는 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여집니다.  요즘은 기자를 뽑을 때 인터넷사업부를 별도로 채용한다는 얘기도 얼핏 본 것 같습니다. 포털이나 자사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기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특성이 있겠지만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기사를 쉽게 생산할 수 있어서 독재정부나 인권탄압 등을 세상에 알리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가짜뉴스나 수준이하의 기사들도 넘쳐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닌데 약간 다른 방향으로 빠졌네요. 답답한 생각에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개발자에게 하면 안 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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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2-14 21:07:36 작성되었습니다]  우연히 책 하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개발자가 안 된다고 말했다]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기획자와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개발자와 협업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2명의 저자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개발자 내지는 개발팀과의 협업을 위한 조언을 담은 책입니다.  그 중에서 [개발자에게 하면 안 되는 말]이라는 소제목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저 또한 개발자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 부분부터 읽어 보았습니다. 간단한 거니까 일단 해주세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개발자의 일(또는 자신의 요청사항)을 간단한 것으로 판단하고 단정짓는다고 합니다. 급하게 기능이 개발되어야 하거나 오류를 수정해야할 때, 기획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판단에 따라 행동하게 되죠. 앞뒤 설명없이 일단 해달라고 몰아부치기 일쑤죠.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더라도 서비스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기능 하나를 변경하더라도 다른 파트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서버에 과부하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기획자는 기능에 대해서 설명만 하고 개발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책에서는 그것이 간단한 텍스트 문구 수정이라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거 다음 주까지 개발해 주세요  조직에 따라서는 개발자를 요청한 업무를 처리해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개발자는 협업을 해야 하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죠. 개발자와 아무런 협의없이 기간을 특정해서 개발해 달라는 것은 협업과정에서 매우 잘못된 행동입니다. 우선순위가 높고 급하게 개발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개발팀의 현재 업무 현황을 확인하고 긴급요청 건에 대한 설명과 일정조율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배려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지시를 받는다고 생각되면 쉬운 일도 하기 싫게 됩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자세로 협업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른 서비스에서는 제공되는 기능인데요  이런 유

유니세프에서 온 15주년 기념 우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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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2-13 20:58:49 작성되었습니다]  올해 추석 때 였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갔더니 유니세프에서 온 우편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후원 15주년을 기념하여 감사하다는 엽서. 10년도 20년도 아니고 15년을 기념해서 보냈다니 조금 의아하기도 했네요 ㅎㅎ 유니세프 홈페이지 아이디를 잃어버려서 로그인도 안 되어 주소를 미처 바꾸지 못했는데, 처음 후원을 시작할 때 입력된 주소로 우편물이 도착했네요. 부모님께서 아직 그곳에 살고 계셔서 우편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니세프에 후원을 하고 있던 지인의 권유로 저도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후원금을 증액하고 나서 얼마 후 회사에 사표를 던지는 바람에 다시 원래 금액으로 후원을 줄이기도 했었어요. 1년 가까이 백수생활 중에도 후원을 끊지 않고 계속 유지했다는 사실을 제 스스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어느덧 15년이 되었다니 놀랍네요.  우리나라에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다른 나라까지 후원을 하느냐는 얘기를 종종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월드비전에서 활동하시는 한비야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해외원조를 받거나 도움을 받았을 때 우리를 도와주었던 그 나라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겠느냐 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제 생각에는 그다지 논리적인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이 어려운 누군가를 도와 주려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제 월급의 20-30% 이상은 지출을 해야 하는데 저는 그만큼을 지출할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제 생활을 줄여가며 그렇게 후원하기는 어렵죠. 그런 일은 저보다 훨씬 잘 사는 부자들에게 좀 떠넘기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한달에 몇만원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도움을 주고 싶은 겁니다.  한달 만원이면 어린이 00명에

창백한 푸른 점 : 태양계 끝에서 바라본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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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2-12 23:00:29 작성되었습니다]  보이저 1호는 1977년 9월 5일 발사된 나사 NASA의 우주탐사선입니다. 쌍둥이 탐사선인 보이저 2호는 그보다 빠른 1977년 8월 20일에 발사되었습니다. 보이저 계획에 따라 발사된 두 탐사선은 외태양계 탐사 임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탐사에 성공하였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아왔던 목성과 토성 그리고 그 위성들의 사진은 대부분 보이저 1,2호가 지구로 보내온 것이라고 합니다.  보이저 계획은 원래는 토성까지만 탐사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탐사선의 성능이 너무 좋았던지(?) 탐사는 계속진행되었고 현재는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를 탐험하고 있습니다.  칼세이건은 보이저1호가 토성을 지나간 시점에 카메라를 지구 방향으로 되돌려 지구의 사진을 찍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나사에서는 반대를 했죠. 태양 광선에 의해 카메라 렌즈가 손상될 우려가 있었고, 자칫 방향조절 장치가 고장이 나서 카메라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세이건의 설득에 결국 나사도 지구의 사진을 한번 찍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카메라 렌즈에 잡힌 지구의 모습을 칼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1990년 2월 명왕성을 지나 태양계 외곽에 도달한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찍은 사진에서 3개의 광선 중 가장 오른쪽 광선 빛 안에 가운데쯤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별이 바로 지구입니다.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로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

깔끔대장 딱아드릴st 전동 청소솔 사용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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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2-10 21:37:58 작성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청소용품 후기를 하나 남겨보려 합니다. 얼마전 휴대폰으로 뉴스기사를 보다가 하단에 뜬 광고를 보았습니다. 욕실 찌든때를 전동드릴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청소솔이었어요. 보는 순간 아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최근 욕실리모델링 이후 유난히도 바닥에 물때가 많이 끼었거든요.  선택한 욕실 타일이 굴곡이 있는지라 그 사이에 물이 잘 안 빠져서 곰팡이 같은 얼룩이 자주 생기더라구요. 겨울에는 보일러가 돌면서 빠르게 건조가 되어서 큰 문제가 없는데 여름철에는 정말 습기가 많아서 정리가 안 되더라구요. 광고는 보았지만 더 싼 제품으로 구입  깔끔대장이라는 브랜드가 아마도 오리지날 제품인 것 같습니다. 광고도 많이 나오는데다 다른 카피제품(?)들 가격이 조금 더 싸더군요. 보통 처음 나온 오리지날 브랜드 제품들이 좀 비싸지 않나요? 그냥 제가 처음 접한 것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요. ㅎ 검색하다보니 조금 더 싼 제품이 있어서 그걸로 구입했습니다. 어차피 둘다 MADE IN CHINA 더라구요. 별차이 없겠다 싶어서 주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구성품도 저에게 더 적합한 것 같았어요. 깔끔대장은 차량용 스펀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차를 닦을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대신 제가 구매한 제품은 막대기형 청소솔을 사은품으로 같이 주셨기에 저에게는 더 적합했었습니다. 배송 후 첫 사용  욕실 바닥에 사용할 것이라서 가장 큰 솔을 선택해서 드릴에 끼웠습니다. 물을 한번 적셔주고 다이소에서 산 욕실청소용 세제를 스프레이로 뿌려줍니다. 조금 기다렸다가 드릴을 작동시켜보았는데요. 손으로 쥐고 돌리기가 힘듭니다. 수평을 맞춰서 돌려야 손목이나 팔에 무리가 안 갈 것 같아요. 솔이 크다 보니 수평 잡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네요. 솔 크기가 작을수록 동작하기는 수월하네요. 바닥의 큰 타일에는 가장 큰 솔로 작업을 하고, 줄눈과 가장자리 부분은 가장 작은 솔로 문질렀습니다. 사용해

1년간의 분양 텃밭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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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2-08 21:44:27 작성되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텃밭을 분양받아 보았습니다. 구청이나 공공단체에서 분양하는 텃밭을 찾아보았으나 집 근처에는 없더라구요. 주변에 사설로 텃밭을 분양하는 농장을 찾아서 계약을 했었습니다. 가격은 그리 싼 편은 아니었으나 집에서 차로 5-10분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기에 결정했습니다. 텃밭 분양 계약  계약기간은 4-11월이었구요. 크기는 2.5평 정도, 농기구, 급수시설, 화장실, 아이들 놀이공간 등이 제공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보아도 땅이 좋아보였습니다. 흙을 조금만 파면 지렁이가 나올 정도였고, 겨우내 비료도 주면서 관리를 하셨던 것 같아요. 초보라 이것저것 물어보면 농장 사모님이 방법을 잘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텃밭 체험이었습니다. 텃밭 가꾸기를 하면서 좋았던 점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사는 전혀 알지 못했어요. 아... 할아버지댁에 시골이라 어릴 적에는 논밭에서 뛰어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농번기 때 농사일은 도와본 적이 없었습니다. 작은 씨앗을 심어 큰 열매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기쁨이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모를 뿌듯함? 성취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감자를 심을 때는 자기도 하겠다며 열심이었는데 날이 점점 더워지니까 안 가겠다고 하네요 ㅎ 결국 주말에 물 주기는 제가 혼자 다 하고. 수확할 때는 같이 가서 캐내는 것은 같이 했네요. 마지막으로 배추와 무를 수확하고 밭을 정리하면서 아이에게 "내년에도 할까?" 라고 물어보니 좋다고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ㅎㅎ  조금 거창한 장점을 나열해 보자면 먹거리에 대한 좋은 관심과 농업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농산물 가격이 더 올라야 된다 생각하다가도 마트에 장보러 가면 왜 이렇게 비싸 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네요... 텃밭 가꾸기의 실패  초보농사꾼이다 보니 제대로 된 재배방법을 잘 몰랐습

독도 명예주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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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1-25 22:46:00 작성되었습니다]  얼마 전 가족들과 울릉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울릉도 여행 일정 중에 독도 방문 일정이 있었어요. 파도나 기상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독도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우리 가족은 독도선착장에 배를 댈 수 있어서 독도에 발을 디뎌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동쪽 끝에 와 있다니!  여행에서 돌아와서 독도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독도입도신청 이라는 메뉴를 눌렀는데 독도명예주민증이라는 페이지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독도 방문객이라면 주민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울릉군 독도천연보호구역 관리조례 제11조에 따라서 발급되며, 발급비용은 무료! 입니다. 독도명예주민증 발급하는 방법  먼저 울릉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갑니다. 포털사이트에서 독도관리사무소를 검색합니다.(주소는 https://www.intodokdo.go.kr/member/) [명예주민증 신청] - [신청하기]를 클릭합니다. 휴대폰본인인증으로 들어가면 입도일자, 승선권번호, 연락처를 입력하라고 합니다. 독도에 입도하지 않고 선상관광으로 진행한 경우에도(기상이 안 좋으면 주변을 한바퀴 돌고 울릉도로 돌아온대요) 배를 탔던 날짜를 적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연락처는 표를 예매할 때 적은 휴대폰 번호를 기입해 줍니다.  꼭 본인이 아니어도 신청은 되는 것 같습니다. 가족 중에 한명이 대표로 신청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네요. 주소를 입력하고 기다리면 주민증을 발급해서 보내줍니다. 그런데... 한달 정도 걸려도 상태가 접수로만 되어 있네요. 신청 건이 많아서 인지, 신청건을 일정량을 모아서 작업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독도명예주민증 우편으로 받기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등기 우편으로 독도명예주민증이 도착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이렇게 생긴 주민증이 들어 있습니다. 종이와 주민증을 붙인 접착제의 성능이 어찌나 좋은지 잘 떨어지지가 않네요.  예전에는 계단을 올라서 독도를 둘러볼

세상에 나쁜 커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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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1-24 20:36:05 작성되었습니다]  얼마 전 강릉에 가게 되어 박이추 선생님이 운영하는 보헤미안커피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한국 바리스타 1세대라는 타이틀로 유명하신 분이라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많이 들어본 곳이었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저는 이곳에 들른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었어요.  원두를 선택하면 선생님이 직접 나와서 커피를 내려주시고, 그 모습을 마음껏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하더군요. 카페의 외관은 그냥 여느 상가같아서 특별할 것은 없었습니다. 내부도 평범했습니다. 그러나 커피 하나만을 생각하며 그 분야에 대가가 되신 분이 운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달리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내부에 커피와 관련된 여러 소품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전단지, 안내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생각을 담은 글이 있었습니다. <a cup of Coffee>라는 제목이 적힌 글이었습니다. 맛있다 맛없다는 손님측의 판단 기준에 맡길 수밖에 없다. 어떤 문장을 빌리면 커피는 우유를 넣으면 다른 음료가 된다.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면 100년을 마신다 해도 커피의 맛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유를 넣은 커피 맛을 좋아한다면 어떤 주저함도 필요하지 않다. 당당하게 넣는 편이 좋다. 커피는 어디까지나 기호품이기 때문에 자신이 마시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법으로 마시면 된다.  어떤 사람은 커피를 좋다 나쁘다로 평가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스타*스 커피가 최고이고 나머지는 다 저급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박이추 선생님 생각처럼 커피는 기호식품입니다.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가 없겠죠. 내가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있을 수 있겠지만요.  저는 사실 스타*스 커피는 너무 탄맛이 강해서 크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커피에 신맛을 좋아하는 사람, 과일향을 좋아하는 사람,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 등등 다양하죠. 원두의 특성에서 오는 이런 다양한 맛에 좋다 나쁘다가 있을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 커피를 많이

층간소음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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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1-18 00:25:10 작성되었습니다]  이사 온 지 6개월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이사 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했어요. 욕실공사부터 해서 내장을 거의 완전히 새로하는 수준이라 한달 넘게 공사를 한 것 같아요. 그 기간동안 소음으로 이웃집이 고생했을 것 같아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사와서 조그만 선물도 하나씩 돌렸구요.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2달 정도 지났을까요? 쿵쿵쿵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한번씩은 어린애가 뛰는 듯이 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구요. 그런데 대부분은 발꿈치로 찍고 다니는 소리였습니다. 흔히 "발망치"라고 하더라구요. 이번에 알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윗집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데 아랫집 소음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소리의 기원(?)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파트 구조가 타워형인지라 옆집 소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옆집이라면 옆집과 맞닿은 벽 쪽에서 소리가 더 크게 들려야 할텐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범인은 아랫집 아니면 윗집인데.. 낮시간에는 집에 없으니 잘 모르겠고, 저녁이나 밤에 항상 시끄러워서 소리가 날 때마다 밖에 나가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집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아랫집은 불이 종종 꺼져있는데 항상 윗집은 불이 켜져 있습니다. 윗집에서 나는 소리로 명확해졌습니다.  관리실을 통해서 처음에 민원접수 뭐 이런 식으로 연락을 취했습니다. 관리실에 서류도 작성해야 되더라구요. 이래야 근거도 남고 나중에 심한 분쟁이 생겼을 때 증거가 된다고도 하더라구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어느날 저녁 심하게 소리가 나길래 인터폰으로 경비실 통해서 연락했습니다.  조금 지나니 윗집에서 내려오셨더군요. 자기집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라고 합니다. 저희도 나름 확인한게 있으니 확신이 있었죠. 부모님 연세 정도 되시길래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낮시간이야 출근하고 없으니 상관없고, 생활하시다보면 소음이 날 수는 있지 않

주식은 투기일까 투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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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1-14 22:13:27 작성되었습니다]  최근 몇주 사이 코스피지수가 반등하면서 많이 올라왔습니다. 덩달아 손해보던 저의 계좌도 원금 수준으로 회복은 되었어요. 며칠만에 한달치 월급보다 큰 금액이 불어나는 걸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주식은 투기일까 투자일까 라는 생각이요.  먼저 네이버 지식백과에 찾아보니 (투자) 는 공장이나· 기계, 원료 및 제품 등 생산 활동과 관련되는 자본재의 총량을 유지 또는 증가시키는 활동, 이에 비하여 (투기) 는 생산 활동과는 관계없이 오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실물 자산이나 금융 자산을 구입하는 행위. 이렇게 나와 있네요.  네이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투자) 1.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2. 이익을 얻기 위하여 주권, 채권 따위를 구입하는 데 자금을 돌리는 일. 3. 기업의 공장 기계, 원료ㆍ제품의 재고 따위의 자본재가 해마다 증가하는 부분. (투기) 1.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 또는 그 일. 2.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기 위하여 하는 매매 거래. 이렇게 나옵니다.  생산활동과 관련이 없는 주식을 사고 파는 행위는 모두 투기인가요? 투자든 투기든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니던가요?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는게...투자 아닌가요? 저는 단기는 투기에 가깝고 장기는 투자에 가까운 게 아닌가 막연히 생각했거든요. 단어의 뜻을 찾아보고는 더 헷갈리네요. 한가지 명확한 것은 투기는 부정적인 단어이고 투자는 긍정적인 단어라는 것이겠죠.  저는 투자라고 하면 그 분야에 대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스스로 사고파는 나름의 기준이나 원칙이 세워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투기라면 나는 뭔지도 모르겠고 옆에 친구가 샀다니까 따라 사고 남들이 돈을 벌었다고 하고 지금 막 올라가고 있으니까 나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름 주식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아요. 대학교 다닐 때는 교양수업

이제서야 코로나19 확진된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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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1-13 20:34:18 작성되었습니다] (앞 포스팅에서 계속) 확진4일차, 증상6일차  전날 밤에는 해열패치를 붙이지 않고 잤고 밤새 체온이 37.5도 정도로 유지되었습니다. 아침에는 코막힘이 사라지고 콧물도 사라졌습니다. 목은 여전히 따가운데 호전되지가 않네요. 어제부터 기침이 자주 나지는 않는데 한번 시작되면 심하게 이어집니다. 약 때문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낮에는 계속 졸립니다. 커피를 안 마셔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이제야 드네요.  낮에는 다시 코막힘이 시작되었는데 평상시보다 높은 베개를 놓으니 코막힘이 좀 덜하네요. 가래가 붙어서 잘 안 나옵니다. 가래 뱉으려다 숨막혀서 죽을뻔 했어요. 오후에 전기포트로 끓인 물을 조금 식혀 미지근한 상태로 많이 마셔줬더니 저녁쯤에는 가래가 좀 잘 빠져나옵니다. 뜨거우면 자극적일까봐 정말 미지근하게 페트병에 부을 수 있을 정도의 온도로 해서 마셨답니다.  하루 종일 37도 초반이었는데 밤11시쯤 체온이 36.7도 나옵니다. 열도 확실히 내린 것 같네요. 확진5일차, 증상7일차  전날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밤에 깼어요. 그랬더니 새벽 내내 밤잠을 설쳤습니다. 새벽3시 넘어서 겨우 잠이 든 것 같네요. 밤에는 가래가 있어 자는게 힘이 듭니다. 목따가움이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점에서 자가키트를 한번 해볼까? 역시나 2줄이네요... 격리해제될 때도 2줄이 그대로 나온다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확진6일차, 증상8일차  전날 밤에는 그래도 푹 잤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니 또 잠이 쏟아집니다. 오늘부터 약에서 해열제는 빼고 먹었습니다. 체온이 정상수치인데 더 낮아지면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지는게 아닌가 싶어서요. 저녁되니 미열이 있길래 저녁약에는 해열제를 포함해서 먹었습니다. 확진7일차, 증상9일차  새벽에 계속 기침이 나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콧물이 자꾸 뒤쪽으로 넘어가는 것 같네요. 가래가 끓고 기침이 많이 납니다. 격리해제 마지막 날 맞나요? 증상이

이제서야 코로나19 확진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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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글루스에 2022-11-12 21:24:04 작성되었습니다]  남들 다 걸리고, 인구의 절반이 걸렸다는 코로나19. 저는 이제서야 확진이 되었네요. 겨울이 다가오면서 코로나 증상이 좀 더 심해졌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방심한 사이 걸렸는지 모르겠네요.. 확진전 증상  첫날 목이 좀 따가웠습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바깥활동을 했더니(거의 바깥에 있었던 것 같네요) 감기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날 목이 계속 따갑고 허리와 어깨가 뻐근하더군요. 어제 텃밭에서 일을 좀 했더니 근육이 놀랐나보다 생각했어요. 밤에 열을 재보니 38.7도까지 나옵니다. 자가검사 키트를 해보니 두줄인 것 같은데 희미하게 나옵니다.(확진되고 찍어놓은 사진을 다시 보니 선명하게 나왔는데 그냥 제가 희미하게 믿고 싶었나 봅니다. ㅎ) 백신을 맞을 때 사놓은 타이레놀 계열의 해열제 2알을 먹고 잠을 잤습니다. 새벽에는 37.2도까지 체온이 떨어졌습니다. 확진1일차, 증상 3일차  아침에 체온이 38.4도가 나옵니다. 해열제를 2알 먹고 자가키트에서 선명한 2줄이 나오네요. 처음 걸린 거라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떨어지고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에 병원에 안 가면 안 될까 라는 생각을 잠시했습니다. 주말에 중요한 일정도 있고 해서요.  그런데 전날 출근해서 같이 근무한 동료와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요. 회사에 서류를 제출하고 자가격리가 되기 위해서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증상도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처방전을 써주기에 뭐 이런 병원이 있나 문진도 제대로 하지 않냐.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증상이 시시때때로 변하면서 감기의 종합적인 증상이 돌아가면서 나타나더군요. 아, 의사쌤이 임상적으로 경험한 대로 그냥 처방해 주신 거구나 싶었어요.  약국에서 약을 지어 오면서 회사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약속된 일정도 모두 취소를 하구요. 일주일간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문자가